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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담원과 소녀 이야기 2006-03-23 09:22:33, 조회 : 1,567, 추천 : 6



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있는..

이혜영이라고 합니다..

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..

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..

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어요..

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..

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

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..

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..

"죄송합니다.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... 다시 조치하겠습니다."

이런 말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.

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좋았지만..

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..

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..

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..

이혜영 : 정성을 다하겠습니다. **텔레콤 이혜영입니다..

고객 :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..

** (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..)

이혜영 :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..

고객 : 1234-5678 이요..

이혜영 :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?

고객 : 난 데요.. 빨리 불러주세요..

(어린 꼬마애가 엄청 건방지군..)

이혜영 : 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? 본인 아니시죠?

고객 : 제동생이예요.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..

이혜영 : 죄송한데 고객 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..

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..

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?

고객 : 제 동생 죽었어요.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?

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..

이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..

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..

이혜영 :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..

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

부모님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.

고객 :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. 그냥 알려줘요..

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애의..

부모님을 좀 바꿔달라고 했죠..

고객: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..

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

들리더군요.

"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그래.. 빨리.."

아빠 : 여보세요.

이혜영 : 안녕하세요. **텔레콤인데요.

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..

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?

아빠 : 제 아들이요?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.

(콰당!! 그럼 사실이란말야??)

그 때부터 미안해 지더군요.

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.

아빠 :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?

딸 : (화난 목소리) 엄마가 자꾸 혁이 (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였거든요)

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..

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..

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..

아빠 :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?

이혜영 : 아? 예..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..

명의변경하셔야 합니다..

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..

아빠 : 알겠습니다.

(전 감사합니다로 멘트 종료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..)

이혜영 : 죄송합니다. 확인후 전화주십시요.

아빠 : 고맙습니다.

이혜영 : 아..예....

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아픔에..

어쩔 줄 몰랐죠..

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. 역시나..

"안녕하세요. 저 혁인데요.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."

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.

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.

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.

첫 번째 메시지입니다.

"혁아.. 아빠다..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

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..

미안하다 혁아,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.

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..

안춥니? 혁아... 아빠 안보고 싶어??"

가슴이 메어 지는 거 같았습니다.

그날 하루을 어떻게 보낸 건지..

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 임에도 불가하고

앞에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.

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..

정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..

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..

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..





2018-08-20
09:56:27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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